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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미국 한인 사회는 왜 못할까?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감동이다. 경기에 나서는 팀이나 선수가 스토리를 갖고 있다면 감동은 배가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정적 동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일본의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학교가 화제다. 전일본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에서의 맹활약 덕분이다. 이 학교 야구팀은 일본 최고 권위의 고교 야구대회에 참가해 승승장구했다. '여름 고시엔'은 대회 참가 자체가 영광일 정도라고 한다. 올해도 전국 3100여개 고등학교 야구팀 가운데 겨우 49개만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까지 합쳐도 전교생이 겨우 160명인 교토국제학교가 본선 진출은 물론 연전연승을 한 것이다.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감동으로 충분하다.         교토국제학교는 1947년 재일 한인들이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모태다. 이후 1958년 교토한국학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1963년엔 고등학교 과정도 개설했다. 하지만 일본 교육 당국으로부터 정식학교 인가를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개교 56년이 지난 2003년에야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아 교토국제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인 학생도 받았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교 명맥을 이어온 재일 한인들의 끈기와 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해외 최대 한인 사회가 있는 LA에도 한국계 학교가 있었다. 윌셔 초등학교와 멜로즈 중·고등학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학교는 이제 이름만 남았다. 1985년 개교했던 윌셔 초등학교는 2018년 문을 닫았고, 멜로즈 중·고등학교는 1994년 개교한 후 5년 만인 1999년 폐교를 했다.        재일 한인 사회는 해낸 일을 LA 한인 사회는 실패한 것이다. 조건과 상황은 일본 한인 사회가 훨씬 열악했을 텐데도 말이다. 윌셔와 멜로즈의 폐교엔 여러 원인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교를 이끌던 이사들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이사들은 학교 발전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의 실행 방안을 찾기보다 자리보전에 더 급급했다. 이사들 가운데는 교육 문제와 전혀 관계없는 인물들도 있었다. 학교 측은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런 학교에 자녀를 맡길 부모는 없었다. 결국 학교는 '학생 수 감소-예산 부족-교육의 질 저하'라는 악순환에 빠졌고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폐교 위기가 알려지면서 한인들 사이에는 논란도 벌어졌다. "기금을 모아 학교를 살리자"는 측과 "왜 사립학교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주장이 맞섰다. 하지만 "왜"의 목소리가 훨씬 컸고   학교는 폐교 수순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도 이사회라는 조직은 별 역할을 하지 않았다. 만약 당시 이사회가 한국계 학교의 필요성을 각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생존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에게는 두고두고 불명예로 남을 것이다.  단순히 한국계 학교 하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 교육의 핵심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웨스트 LA 지역에 갈 때면 유달리 유대인 학교들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2세들에게 늘 정체성을 강조한다.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라고. 그런데 정작 그들이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를 체화할 수 있는 수단은 제공하지 않고 있다. 관심 있으면 필요한 내용물은 알아서 채우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정체성을 강조해봐야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지난해 재외동포청 출범에 잠시 기대감을 가졌었다. 2세들의 정체성 함양이 역점 사업의 하나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내부 역량으로 어렵다면 외부 지원을 받아서라도 풀어야 할 과제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부연 설명 한 가지, 교토국제학교의 교가는 '동해 바다 건너서'로 시작되는 한국어 가사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미국 한인 고등학교 야구팀 한인 사회 고등학교 과정

2024-08-22

[살며 생각하며] 응답하라 1992

그날따라, 솔직히 약간 고의성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낮에 미용실까지 다녀왔었다. 삼십년 만에 만나는 나이 오십 제자들과의 만남에, 적어도 팍 삭은 모습으로 나갈 수는 없다는 61세 내 자존심의 최후 몸부림? 그리하여 머리는 와인색으로 염색하고, 노란 꽃무늬 원피스에 평소답지 않게 굽 높은 노란 샌들까지 신었댔다. 이렇게 하고 나풀나풀, 팔랑팔랑 식당을 들어섰을 때, 완전 충격에 빠지시던 이분들의 표정이란. 후에 이들은 말했었다. 삼십 년 전 쌤이니, 지금은 비틀비틀 지팡이 내지는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을 연상했었더라고.     일 년 반 전 여름 이렇게 시작된 나의 중년 제자들과의 만남 이름은, 응답하라 1992. 포트리 고등학교 초창기에 가르치던 아이들, 오십 세가 되었어도 내게는 아이같이만 느껴지는 이 든든한 제자들의 졸업 연도가 대부분 1992년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응답하라 1992 제자들과 만나면서, 오년 전 은퇴 시부터 꾸던 나의  한 꿈이 힘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나와 공부했던 한국 아이들을 선후배로 연결해주는 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가장 힘든 시기에 낯설기만 한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언어로 어려운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느라 참으로 고생했던 아이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편견과 새로운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때로는 내 앞에서 눈물도 보였었던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을 지나 미국 사회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해주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고 싶은 이 꿈이, 그동안 엄청나게 내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2017년 12월, 국내외  졸업생들의 영상 메시지와 사진 모음으로 정성껏 나를 은퇴시켜주던 재학생들과 꽃과 케이크를 들고 학교를 찾아온 최근 졸업생들하고, 학교 앞 맥도날드로, 중국집으로 돌아다니던 그 아쉬운 오후의 끝자락에 차를 타고 파킹장을 빠져나올 때, 모두 모여 서서 미스킴 빠이 하며 손을 흔들어주던 이 예쁜 어린 제자들도 이제는 다 성인이 되었다.     이번에 나의 책이 출간되면서, ‘응답하라 1992’ 제자들 중심으로 북 사인회를 겸한 동창 모임이 시작되었다. 졸지에 준비위원이 되어버린 응답하라 1992들은 지혜롭게 회비를 정했다. 90년대 졸업생은 50불, 2000년대 졸업생은 40불, 2010년대 졸업생들은 30불, 그리고 막내인 2020년대 졸업생은 20불로. 제자 중 하나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모임을 한 탓에, 맛있는 식사를 했는데도 회비는 남았고, 아이들은 이 돈으로 내가 지원하는 단체인 러브더월드의 미혼모·미혼부들에게 책을 보내주었다.     30년이라는 시간을 어우르는 이들의 모임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벅찬 감사의 물결이 따뜻하게 일렁거렸다. 이런 모임을 기뻐하고 찾아온 이 아이들이 너무 소중해서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막 같은 삶에서도 서로에게 오아시스가 되어주고, 두 번째 산을 만나도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이들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우리는 결코 혼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제자들이 허락을 받으러 온다. 쌤, 우리 다 21세 넘었는데요? 신나게 소맥을 제조하는 아이들을 남겨두고, 응답하라 1992들과 나는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가 문 닫는 밤 11시까지, 나이에 안 맞게 핫 초콜릿들을 좌악 시켜놓고, 요즘 무슨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추천부터, 이런저런 수다를 함께 나누며 이 중년 제자들과의 첫 동창회 날 밤이 깊어만 갔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응답 국내외 졸업생들 고등학교 과정 중고등학교 시절

2023-02-01

[김형석의 100년 산책] 1000명을 한 줄로 세우는 사회에는 앞날이 없다

수능식 시험제도 이대로 둘 건가 아이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들어   공부는 스스로 즐겁게 택하는 것 학교보다 학원을 찾으면 되겠나   사고력·창조력이 평생을 이끌어 미래 준비하는 새 정부의 교육은?   8년 전이다. 월간 샘터사 사무실에 네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인이 된 전 국회의장 김재순씨가 “자식 자랑은 점잖지 못한 일인 줄 아는데, 며칠 전 내 손주가 미국 MIT대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나와 인척 관계이기도 해서 “그런 자랑은 많이 해도 괜찮아. 누구든지 아버지 닮았다고 하지 할아버지 닮았다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라고 해서 모두 웃었다.    나는 ‘아들딸 가리지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한창일 때 딸 넷, 아들 둘을 키웠다. 죄송스런 생각이 들어 딸 셋은 미국에서 살기로 했다. 나 자신이 교육자이기 때문에 항상 미국에 있는 손주들과 한국에서 자라는 손주들을 비교해 보곤 한다. 미국 외손주 다섯은 자유로이 잘 자라 제각기 길을 택했다. 넷은 의사가 되고 외손녀는 MIT를 나와 애플의 중견사원으로 있다. 지난 9월에는 증손주가 하버드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모두가 즐거운 학창 생활을 보냈고 자기 길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산다는 점이다.   미국 손주들 vs 한국 손주들   그런데 한국의 손주들은 교육정책의 후진성으로 자유로운 학창 생활을 즐길 수 없어 한 번뿐인 인생의 자율성과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많이 개선됐다 해도 초등교육은 중등교육의 예비기간이 되고, 고등학교 교육은 대입을 위한 과도기가 되었다. 성적 평가가 인간 평가의 기준이 되어 점수에 매달려 자율적인 학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정상적인 학교교육보다 학원이나 입시준비의 노예가 되었다.   성적을 위한 공부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는 즐겁게 기초교육을 받으면 된다. 중학교를 마칠 때쯤부터는 자율적인 학습 과정을 찾아 스스로 즐겁게 공부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고등학교도 대입 준비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인성교육은 배제되고 성적이 학교생활의 전부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시험공부의 노예로 만드는 수능시험이 걱정이다. 그 비교육적인 부담을 벗어나기 위해 일찍 유학을 떠나기도 한다.   내 손주들도 그랬다. 큰손녀가 집 가까이 남녀공학 중학을 마치고 이화여대 부속 금란여고에 입학했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수능시험을 위해 인간교육은 멀리하게 되었다. 학교성적이 우수한 편도 못되니까 원하는 대학에 갈 자신도 부족했다. 학교 성적이 A보다 B 정도였다. 그것이 잘못은 아닌데 자존심을 빼앗기는 모습을 부모로서는 보기 힘들었다. 1년 손해를 보더라도 미국으로 보내 고등학교 과정을 밟게 했다. 그랬더니 자기가 하고 싶은 선택대로 즐겁게 공부했다. 콜로라도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마음 편히 자기 길로 정진할 수 있었다. 지도교수의 추천에 따라 전공분야 대학원을 선택했고 올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위논문과 더불어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지난 9월 학기부터 일리노이주립대학 교수로 진출했다.   내가 객관적인 평가를 해본다. 그 애가 고등학교 과정을 수능시험 준비로 다 보냈다고 해서 한국에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지 모르겠다. 수능시험 굴레를 벗어나 즐거운 학교생활을 한 것만도 감사한데, 스스로 전공분야를 선택한 후에는 우수한 성적과 논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서울 손주 중에도 고등학교 과정부터 미국으로 가 대학을 끝내고 귀국한 애들이 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 넓은 의미의 인문학 과정과 영어는 충분히 수료한 셈이다. 귀국해서는 원하는 분야에서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직장에서도 국제무대로 진출할 길이 열린다. 나는 수능시험의 제한된 수업과 교육의 굴레에서 해방해주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후배 교수 중에는 자녀교육 때문에 부인은 귀국하지 못하고, 한국에 혼자 머물면서 교수생활을 하는 가정이 많다. 내 아들딸들은 대학원부터 외국 유학 가는 것을 권고해 왔다. 그때는 수능시험도 없었고, 고등학교부터 미국에서 수학한 학생은 귀국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적어도 대학교육까지는 국내 교육으로 충분한 제도와 과정을 수립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교육은 제도와 규범을 먼저 만들어 놓고 학생들을 그 규범에 맞추어 가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을 위해 제도와 규범을 지속해서 개선해 가야 한다. 수능시험의 폐단과 모순이 드러난 지 이미 오래다. 수능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대학에 와서는 학과 성적이 뒤지는 경우가 많다. 한때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려는 학생이 두 명밖에 없어 교수들이 국립대학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젊음의 열정을 병들게 하지 말라   교육은 계속된 선택이다. 개척과 창의력이 없는 대학은 학문의 길을 개척하지 못한다. 기억력에 의존하는 성적은 고등학교로 끝나지만, 사고력과 창조력은 대학 이후의 평생을 좌우한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필요할지 몰라도, 학문을 위한 창의적 연구는 시험의 한계를 넘어야 가능하다. 시험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는 폐습이 국가고사, 심지어는 취직시험에까지 미치고 있다. 젊은 정열과 창조력을 병들게 해서는 안 된다.   1000명을 한 줄로 세우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 1000명을 100줄에 서게 하면 10명마다 다양한 진로로 성장할 수 있다. 교육을 이념정치의 수단으로 삼는 러시아·중국·북한식 교육을 꿈꾸는 교육자가 있다면 자유 민주국가를 병들게 하는 범죄행위가 된다. 새로운 정부가 미래교육을 위해 창조적인 방향과 정책을 모색해 주기 바란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사회 앞날 고등학교 교육 전공분야 대학원 고등학교 과정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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